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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믿음을 만날때

글쓴이 : 김진산 날짜 : 2019-07-07 (일) 02:36 조회 : 101

저의  할아버님은  7년동안을  반신 불수인 중풍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풍병이 얼마나 절망적인 병인지 압니다.  식사도  먹여 드려야하고,   대소변도  받아내는  참담한 병이지요.  저의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수발을 하셨습니다.  저도  주말에  집에 오면,  할아버지 머리를  깍아 드리곤 했습니다.  자꾸만 고개를 움직이셔서  잔뜩  긴장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가족이  함께  짐을 짊어진 것이지요..  아마 가족 공동체가 있었기에  할아버지께서는7년을  견디실수 있었던 같습니다.  성경에는 중풍병자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나병처럼 전염이되거나 공동체에서 쫒겨나야하는 병은 아니지만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 그리고 비참한 실존을  드러내는 병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가버나움이란 지역에  어느 집에서  아픈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사역을 하고  계셨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인기는 요즈음말로  하면 하늘을  찌를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가는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어떤  중풍병자의  친구들도   중풍 병자를   누워 있는 침상채  들고 왔는데..  집은 이미사람들로 꽉찼고  입구에까지  사람들로 빽빽해 도무지  집안으로 들어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중풍병자의  침상을 들고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가옥 지붕은 보통 평평하고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풍을  뜯어내고   침상을 예수님 앞에  달아내렸습니다.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즉석에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올 필요는 없었어요.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사함을 선언하시고  병을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고통중에  있는 친구를 도와줄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위로할수 있고, 음식을 만들어다 준다든지,  몸을 씻어주고,  약을먹여주고,  제가 저의 할아버지께 했던 것처럼 머리를 깍아줄수도 있습니다.  모두사랑하는마음에서 할수 있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이런 것에서 한발    나갔습니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볼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위해   적극적인 수고를 한것입니다.  지붕을 뜯어내는것이  예사일입니까?   당시 사람들은 지붕 재료로  진흙에  나뭇가지나  풀들을 섞어서 사용했으니  우루르하면서  흙덩어리들이 떨어졌을겁니다.   자기집도 아닌데  곤란한 상황을 만들수 있고..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친구들은  그것까지 기꺼이 감내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친구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서 있는 수고는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사람의 필요에 민감하게 되고  필요를 채워주시 위해 애쓰게 되니까요.  사랑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만나면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사실 주위의 약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가장 힘든것은 육체적인 수고가 아닙니다.  나의  사랑이, 나의  수고가 그를 낫게할 없다는 무력함을 느낄때 입니다.  육체적인 질병뿐이 아닙니다.  아무리 인내하며 사랑해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자녀,   아무리 사랑해도  회복되지 않는 마음… 나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친구를 침상채들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게합니다.  옥상에 올라게 합니다. 지붕을 뚫게합니다.  교회는 사랑이 믿음과 만나는 곳입니다.


조강왕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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